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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찰료와 의사의 수입
등록일 2021-03-04

진찰료와 의사의 수입

한림의대 내과 김현아 

 

  내가 의과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의료 수가가 낮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다. 진찰료가 구두닦는 값과 같다는 비유도 있었는데 그런 현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모든 수가가 다 낮지만 진찰료는 의사 행위의 핵심에 해당하는 수가이기 때문에 저수가의 상징처럼 언급이 되었다. 그런데 왜 그 긴 세월동안 우리는 국민들에게 진찰료 수가가 낮다는 것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의료 수가는 자동적으로 의사들의 수입과 연동이 된다. 의사라 하면 고소득자의 상징처럼 인식이 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수가 인상에 대해 “얼마나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런 연상 작용은 상당히 완고한 것으로 웬만해서는 바꿀 수가 없는 것 같다.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능력에 대한 보상을 인색하게 하고 무조건적인 평등을 꾀하는 “의료 사회주의 정책” 이라는 식의 격한 반응으로 정부를 비난해왔다.

 우리나라의 진찰료는 얼마나 낮은 것일까? 제외 국가의 진찰료와 직접 비교를 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나라의 시간당 최저 임금과 비교를 해보면 그나마 합리적인 접근이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보건정책 입안자가 표본으로 삼는 OECD 유럽 국가들의 경우 1차 진료의의 진찰료는 최저 임금의 2.3배(벨기에), 3.65배(영국) 수준으로 우리나라(1.3배)에 비해서는 높다. 놀라운 것은 이들 국가의 평균적인 진료 시간이 15분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진찰료가 그리 싸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병원은 물론이고 개원의들도 진료 시간이 15분보다는 훨씬 짧고 아마도 시간당으로 계산을 하면 오히려 우리 나라의 진찰료가 비쌀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괴리는 의료 시스템의 차이에 기인한다.

 지난 2020년 전공의들의 대규모 파업을 불러 일으킨 원인이 된 공공 의료 확충의 차이인데 유럽 국가의 의사들은 거의 대부분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준 공무원과 같은 지위를 가지며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보는지가 수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의료가 사영화 시장에 맡겨지지 않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소위 공적인 시스템에 의해 운용되는 유럽 국가의 진찰료는 행정적인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일 뿐 의사의 수입과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이렇게 완전히 다른 시스템에서 의료를 운영하는 국가들의 진찰료는 우리나라 진찰료 책정의 참고 사안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의 진찰료는 예상대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최저 임금 대비 높게 책정이 되어 약 10.5배에 달한다. 그러나 이미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나 복지 수준이 이상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어 버린 만큼 미국을 기준으로 해서 진찰료를 책정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과잉 검사 등을 제어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관리들은 진찰료의 작은 상승만으로도 건강 보험 재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긴 세월동안 인간의 일은 보상을 하지 않고 검사나 고가 장비 위주의 행위만 과보상을 하는 시스템이 운용되어 왔기 때문에 환자들 자신도 반드시 검사를 해야만 좋은 진료를 받았다고 오해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지금 검사를 급격히 줄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총액 진료제”를 쉽게 생각하는 일부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

 

 기존의 상대 가치 체계 하에 입력된 각종 수가의 시간당 인건비를 계산하면 최저 임금도 안되는 것들도 많이 있는 현실에서 진찰료를 현실화할 방법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의사들의 시간당 인건비를 산정하는 작업은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상충되는 생각, 즉 한편으로는 정부가 의사들의 수입을 형편없이 낮추고 싶어 한다는 불신,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안되는 높은 수입 수준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깊이 깔려 있는 의사들의 심리에서 타협점을 찾기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적정한 수입 수준에 대해 의사들 자신이 근거를 가지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

 지난해의 파업 시 많은 사람들이 의사들을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나라 의사들이 OECD 국가들에 비해 수입이 높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 2020년 노동자 연봉과 2016년 의사 연봉을 비교하면, 의사가 3.97배 더 많고 2016년 이후 지난 4년 동안의 소득 변화를 감안할 때 노동자와 의사의 연봉 격차는 4배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며 의사 수의 증가를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선진국 의사들이 일반 노동자보다 2~3배를 더 버는 현실에서 의사들이 일반 노동자보다 4배를 더 버는 한국의 상황은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시각 또한 OECD 국가의 공무원 의사와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의사를 비교한 오류인데 월급을 받고 진료를 보는 환경까지 국가에서 제공받는 의사들과 모든 것을 직접 자본 투자해야 하는 의사들의 수입을 비교하는 것은 오류이기 때문이다. 소위 “5억원 연봉을 줘도 안 오는 지방 의료원 의사”에 대한 비난은 노동법 위반에 해당하는 이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무지와 함께 공공의료기관의 월급 수준이 자영업자인 개원의들의 수입 수준과 맞물린다는 점을 간과한 데에서 온 착오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제시한 데이터 안에서도 OECD 국가 내에서 자영업자 의사들은 일반 임금의 4배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과도한 노동량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결론적으로 적정 노동량, 적정 수입에 대한 타당한 논의가 없이는 진찰료를 비롯한 수가 논의는 언제나 공회전을 할 수 밖에 없고 의사들은 OECD 대비 의사가 부족하다는 논의가 나올 때 마다 언제나 수세에 몰리고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의료 공영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이에 필요한 재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의사들의 방해 때문이라고 몰아갔고 의사들은 항상 이런 프레임에 그대로 걸려 들었다. 진찰료 정상화는 적정 진료 시간, 적정 환자 수, 그리고 이런 진료 환경 하에서 국가가 보장해주는 수입 수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진행되어야 이루어 질 수 있을 터인데 가장 바람직한 것은 날림 진료를 하지 않아도 적절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더 이상 진찰료 논의조차 필요 없어지는 미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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