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화기학회 윤리위원회에서 보내는 소화기 생각(2020년 3호)
소화기 생각(2020년 3호) - 불교계의 시각에서 본 연명의료결정법
동국대학교 일산불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이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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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 역시 임종 시기에 이르러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단순히 생명만 연장하는 치료의 고통과 위해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것이 그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규정과 절차를 법으로 제정하여 시행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법률과 시행규칙은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현장에서의 다양한 상황들은 법률로 명쾌하게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또한 각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률해석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는 관련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갈등이 현장에서 원만히 해결되지 못 하여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법률의 한계 때문에 본 법의 취지를 부정하거나 비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 학회지에서 거론된 다양한 문제점과 이의를 논쟁하는 것은 본 소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 중에서 이번 호에는 불교적인 시각에서 연명 의료를 살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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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문학이 그러하듯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시대적, 지리적 요인 등 상황에 따라 그 의견이 다양한 것이 장점이자 특징이듯이, 종교적인 해석도 너무나 다양하게 이루어짐을 감안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드러낸 여러 의견은 불교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닌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임을 먼저 밝혀 둡니다.
종교 자체가 현실의 한계를 미래라고 하는 또 다른 세계 즉 내세에서의 환생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고, 불교는 특히 그러한 환생의 관념을 통해 현세의 어려움을 인내하고 더욱 큰 가치로 승화시키는 가르침을 견지합니다. ‘진리’라고 하는 큰 우주의 흐름 을 이해함으로써, 과거로부터 현재 나아가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 속에서 인간 존재 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식하게 합니다. 이런 ‘나’라고 하는 존재의 존엄성은 다른 사람의 존재와 존엄성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자비’라고 하는 공동체 덕목으로 실현되게 합니다. 불교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 이르는 이유입니다. 모든 존재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란 어느 한 사람(싯다르타)을 지정하는 것이 아닌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깨달음의 과정과 결과를 ‘지혜’라고 합니다. 이 깨달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과정이 바로 ‘자비’행위입니다.
불교에서 생각하는 죽음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삶(현세 現 世 )과 연결된 또 다른 형태의 삶(내세 來 世 )입니다. 큰 스님의 법문 중에는 현세에서의 모습이 내세로 변하는 과정 즉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삶을 생로병사 4단계의 고통(사고 四 苦 )으로 분류하고, 그 고통을 벗어나도록 자신(소아 小 我 )을 수행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하여 모든 고통을 벗어난 경지 를 ‘해탈’이라고 합니다(무아 無 我 ). 또한 불교에서는 이미 깨달은 사람이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이들은 고통받는 존재들에 대해 연민과 보시를 실천하는 적극적이고 실천적 자비 행위로 나아가게 가르칩니다(대아 大 我 ). 따라서 연명의료의 의미와 그에 따른 결정은 불교적 관점에서는 살아 있는 것 이상으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결정으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살아서 겪는 고통도 자비로써 도움을 주어 고통을 없애 주는 것과 같이 죽음에 이르러 내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원만하게 자신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돌아 가신 분들을 위해 ‘49제’라고 하는 제사의례를 지냅니다. 이를 통해 죽은 사람과 남은 사람 들 간의 정서적 위안을 주는 것 이상으로 내세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세를 더욱 충만하게 지내도록 가르침을 줍니다. ‘천도제’라고 하는 의식 역시 죽은 이들을 위한 의식의 하나로 불교에서는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입니다. 이를 통해 죽은 이의 영혼이 더욱 가치 있는 곳에서 환생하도록 인도하는 의례입니다.
간략히 불교에서 죽음과 관련된 몇 가지 특징들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처럼 생명과 죽음 그리고 연명의료의 결정에 대한 입장은 일반적인 특히 법률적인 해석보다는 불교적 관점이 매우 유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불교의 역사가 오래 되기 때문에 불교계 내에서도 다양한 관점과 주장들이 여러 종파를 형성하게 되었고, 각 불교종파 간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주장하는 바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시면 좋겠습니다.
향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법률에 담지 못한 다양한 사례들은 국립연명의료관리원이 주관하여 개선하리라 기대합니다. 따라서 법률과 시행규칙의 부족한 점이나 개선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관리원에 제시함으로써, 본 법이 더욱 환자들에게 유익하고, 의료인들에게도 합리적인 도움이 되도록, 함께 이 법을 향상시키기를 희망합니다.
짧은 글로 제 개인의 생각을 담았음을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